바틱에 담긴 일곱 가지 이야기

 

“바틱"의 어원은 자바어로 ‘넓다’는 뜻의 “암바 amba"와 점을 찍는다는 뜻인 “마틱 matik”의 합성어입니다. “넓은 면에 점을 찍는다"라는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녹인 왁스에 염료를 섞어 넓은 천에 점을 찍어 일정한 무늬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바틱의 쓰임새는 참 다양합니다. 옷, 지갑, 팔찌, 가방, 수공예품 등 바틱 패턴을 활용한 물품들이 아주 많아요.  Experience Indonesia in 360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인 바틱,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패턴이 너무나 다양합니다. 지역마다, 상황에 따라 뭔가 규칙이 담겨있는 듯도 하고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일곱 가지 바틱 패턴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1 | 까웅(Kawung): 야자나무 패턴

18 세기 족자카르타의 술탄왕국에서 가장 자주 사용된 패턴으로 NASA가 인정한 최고의 공기정화식물인 ‘아레카 야자열매’를 본뜬 이 기하학적 패턴은 왕실 혈통을 가진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귀한 문양입니다. 인도네시아어로는 '꼴랑 깔링(kolang kaling)’이라고 하며 라마단 기간에 주로 먹는 신성한 열매이기도 합니다.

2 | 빠랑(Parang) : 안전과 보호


빠랑 문양에는 칼처럼 보이는 "S"모양의 길고 얇은 기호가 담겨있습니다. 16세기 중부 자바에서 마타람의 술탄인 아궁의 통치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데요, 술탄 중 한 명인 끼 아겡 뻬르마나한(Ki Ageng Pemanahan)의 아들 다낭 수타위자야(Danang Sutawijaya) 왕자가 남해안의 들쭉날쭉 한 바위를 관찰하면서 파랑 문양을 고안했다고 합니다. 이 문양의 바틱을 입고 위험을 피할 수 있었던 빤자(Panja) 왕자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내려올 정도로 많은 자바 인들이 파랑을 보호와 보안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3 | 세까르 자가드(Sekar Jagad) : 사랑의 표현

18세기부터 사용된 세까르 자가드 패턴은 네덜란드어로 “지도”라는 뜻의 “까르 kar"와 "세계"를 의미하는 자바어 “자가드 jagad”라는 두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인도네시아어로 세까르는 '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다양성이 지닌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사랑과 행복을 전하는 꽃문양이 전하는 신선한 느낌과 밝고 명랑한 색상 때문에 결혼식 드레스 패턴으로 가장 많이 쓰이기도 합니다.

4 | 뜨룬뚬(Truntum) : 여왕의 선물

 

조코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 솔로(Solo) 지역에서 많이 쓰이는 패턴으로, 수난 빠꾸부와나 3세의 딸인 까능 라뚜 껜짜나 공주가 만든 문양이라고 전해집니다. 남편의 불륜으로 슬픈 밤을 지새우며 왕비의 마음을 달래준 밤하늘을 수놓은 별 무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왕비의 정성에 감복한 왕은 마음을 돌렸고 둘의 사랑은 다시 불타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전설 때문에 이 문양은 ‘진정한 사랑’의 상징이 되어 특히 결혼식 예복으로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5 | 울람 사리 마스(Ulamsari Mas) : 번영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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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이 주생계수단인 발리섬사람들이 해양 생물과 천연자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문양입니다. 생활력과 번영을 묘사하기 위해 화려한 색감을 써서 새우와 생선 모양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6 | 부케탄(Buketan): 화려한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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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꽃다발"을 의미하는 부케는 네덜란드어인 “보켓 boeket"에서 유래했습니다. 부케탄 문양은 네덜란드의 패션 디자이너인 엘리자 반 주윌렌(Eliza van Zuylen)이 자바와 아르누보(art nouveau)의 상징들을 결합해 창조한 문양으로 위의 여섯 가지 바틱과는 사못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부케탄의 원래 주요 모티브는 새가 있는 비대칭 나무 문양이었지만, 1910 년경부터 꽃다발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종이에 말린 꽃을 잘라 바틱 무늬로 만들어 실제 꽃다발의 느낌을 살렸다고 합니다.

 

7 | 라왕 세우 (Lawang Sewu) : 개의

스마랑 지역을 대표하는 건물인 라왕 세우는 자바어로 “천 개의 문”을 뜻합니다. 이 바틱 문양은 1945년 10월 15일부터 10월 20일까지 라왕 세우 인근에 위치한 투구 무다에서 인도네시아와 일본 군인들이 사이에 벌어진 “스마랑 전투”, 인도네시아어로는 5일간의 전투(Pertempuran Lima Hari)라 불리는 역사의 한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습니다. 꽃, 나비, 나무 등 패턴을 가미해 피비린내 나는 전투 장면 대신 전쟁 후 다시 평화가 찾아온 라왕 세우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왁스 저항 염색법(wax-rest dyeing)을 사용해 만드는 바틱은 순발력과 창의성을 요하는 예술작품으로 다양한 패턴 속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와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면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10월 2일은 바틱의 날입니다.

바틱의 아름다움과 기원, 문양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널리 알리고, 오랜 세월 패턴을 만들고 지키며, 발전시켜온 공동체의 노고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시간입니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그 지역을 대표하는 패턴을 담은 바틱을 하나하나 사 모아보는 건 어떨까요?